제35회 영추포럼(080728) 후기: Kathryn Gustaf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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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특별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을 보면 내가 힘이 난다거나, 만약에 같은 분야 종사자라면 그 사실 자체가 나에게 덩달아 용기를 주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미국과 프랑스의 두 나라 국적을 갖고 있으며, 시애틀과 런던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조경가 캐서린 구스타프슨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싱가포르에서 업무를 마치고난 후 사실상 개인적 휴가를 위해 한국을 찾았던 터였다. 그러다가 우리를 알게 되었고 영추포럼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는 그 취지에 공감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주었다. 그녀가 영추포럼을 위해 우리 사무실에 머물렀던 시간은 약 4-5시간 정도였다. 그러나 그날 이후 2주가 훌쩍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녀의 존재를 느낀다.
그녀는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였고,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주는 멘토였으며, 무엇보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강의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 주고 받은 솔직한 대화를 통해 나는 그녀가 수많은 식구들을 책임지고 있는 현명한 경영자라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다.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항상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평소 나의 믿음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경험이었다.
마침 한국 방문 직전 싱가포르에서 강연한 자료가 있었기에 우리는 잘 준비되고 사전 연습(?)까지 거친 최고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모든 프로젝트를 마치 사자가 먹이를 노리는 것처럼 조직력과 집중력을 동시에 구사하면서 접근했다. 한편으로는 실증적인 연구와 조사를 진행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회화와 조각 등에서 받은 영감을 기초로 상상력을 전개시켜 가고 있었다. 시애틀 오페라 하우스, 시카고 밀레니엄 공원, 싱가포르 환경공원, 베니스 비엔날레의 천국의 정원 등 하나 같이 세계적인 수준의 주옥같은 작품들이었다. 초대한 우리도 ‘아니, 이런 사람이었단 말이야?’하며 놀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는 다이아나 황태자비를 추모하는 런던 하이드 파크의 기념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1년이라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에 -‘빨리빨리’는 한국 사회만의 특징은 아닌 듯 하다- 이루어진 이 프로젝트는 흐르는 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아낸 것이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그녀는 첨단 컴퓨터 프로그램을 동원했고, 그 데이터는 고도로 복잡한 석재 가공 공정에 그대로 사용되었다. 예술은 당대의 가장 발달된 기술적 진보와 결합할 필요가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셈이었다.
불행히도 이 프로젝트 완성 직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본래의 의도와 달리 더렵혀지고, 기계장치에 결함이 생기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급기야 평소에도 신랄하기로 유명한 영국의 언론이 그녀의 명성을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당일 영추포럼에 참석했던 런던대학의 샬롯 홀릭 교수는 그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대단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되살려 문제를 모두 해결했고 지금 이 기념물은 런던의 새로운 아이콘으로서 많은 사랑을 받는 명소가 되었다. ‘이후 몇 년간 영국으로부터는 설계 의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호전되었지요.’ 이 담담한 한 마디 속에 그녀는 그간의 고통과 환희를 모두 담아내고 있는 듯 했다. 우연이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오늘, 그녀가 보내온 작품집에는 바로 이 다이아나 추모비가 그려진 카드가 들어있었다.
영추포럼 직전 주말에 우리는 그녀와 함께 조경 디자이너가 관심 가질 만한 서울의 몇몇 장소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아이디어는 좋은 것이 많으나 만들기를 잘 못 만들었다.’ 그러면서 이음매가 매끄럽지 않은 스테인레스 난간, 목재를 잘못 선택하여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있는 데크, 거칠게 마무리된 벽돌 등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문제는 결국 설계자나 시공자 개개인의 문제이기 이전에 문화적 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기는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다. 만사는 아이디어로 시작되지만 승부가 갈리는 것은 디테일에서다.
그녀는 ‘하늘은 나의 것이다(The sky is mine.)‘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고 했다. 나무에서 시작해서 난간, 가로등, 바닥 포장, 벤치 등 하늘 아래 놓이는 모든 것은 자기의 업무 영역이며 또 자기가 마땅히 책임지고 콘트롤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아무도 이런 문제를 콘트롤하는 사람이 없는 듯 하다‘고도 했다.) 조경가가 단순히 나무 심는 사람이 아니며, 건물이 그 주변 환경과 관계 맺고 의미를 획득하는 모든 작업을 총괄하는 사람이라는 그녀의 주장은 매우 원론적인 것이면서도 우리에게는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녀와 보낸 시간들이 마냥 즐겁거나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말을 적당히 가려가며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래서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가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놀랄만큼 솔직했고, 또 대상을 본질적인 차원에서 대하려고 했다. 캐서린 구스타프슨은 보기 드문 인격체(a person of integrity)였다. 바로 그 점이 내가 지금 이렇게 책상머리에 앉아 그녀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글: 황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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