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회 영추포럼(150514) 후기: 연극평론가 안치운
첫 포럼은 한문학자로서 옛문헌을 통해 한국인이 어떻게 자연을 즐겨왔는지 짚어본 안대회의 ‘물 위에서 보는 풍경’으로 시작했다. 두 번째 포럼은 건축가로서 야외를 새롭게 바라본 황두진의 ‘야외의 귀환’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연극평론가 안치운의 ‘집 안에서 바깥으로: 자유와 연대’ 이야기를 듣는다.
연극평론가 안치운은 프랑스 유학 중에도 틈만 나면 산으로 들로 돌아다녀 전공 공부와는 가깝지 않았노라 말한다. 전공의 깊이만큼 산과 들, 그 길 위의 사람에게 빠져 지낸 것으로 이해된다.
맨처음 저자로서 안치운을 알게 된 것은 학고재에서 펴낸 「옛길」이란 책을 통해서이다.
걷고 사람을 만나고 사유하고 언어를 배우는 일이 옛길 위에서 이루어졌음을 기록해 나간 문장을
읽다보면 머물러 있는 사람의 마음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야 만다.
이번에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바깥’이란 주제를 담은 책이나 백과사전 같이 다양하고 밀도가 높다. 바깥으로 나가 탐구하고 경험하며 터득한 연극, 언어, 문학, 영화, 사진, 노래, 자전거는 비슷비슷한 삶을 떠난 일상의 가벼운 혁명과 연결되어 있고, 거기에는 자유와 연대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 극단 중 가장 오래된 극단은 유랑극단이다. 그에게 연극을 공부한다는 것은 유랑의 가치를 생각하는 것이라 한다. 프랑스국립극단에서 연극하려는 사람에게 “너 배우가 되려고 하느냐?” 하는 물음은 ‘너 가방 싸는 거 좋아하니?’로 대체된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배우는 모두 붙박이로 더 이상 유랑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일상 속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아웃도어, 가출의 모습은 비슷한 등산복의 물결로 규격화되고 있다. 희랍어로 싱글, 멧돼지는 ‘혼자있기를 좋아하는’이란 뜻의 어원 singularis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가 사는 부암동에 멧돼지가 방향을 잃고 가끔 불빛이 있는 동네 편의점으로 출현하는 일과도 아이러니하게도 맞닿아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사람들은 조용히 바깥으로 나와 혼자 사색하기 보다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으로 산에 왁자지껄 몰려다닌다. 바깥으로 나가 자유를 얻고자 하면 멧돼지의 어원처럼 혼자 조용히 일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가 오래전부터 집 바깥으로 나가 오른 산은 백석의 디아스포라적 시를 읊는 환상 공간이다. 그리고 깊숙한 오지에 살고 있는 화전민의 울림이 있는 언어를 배우는 학교 아닌 학교이기도 하다. 행정구역 상 이름으로 ‘조경동’ 계곡은 화전민들에게 ‘아침가리’다. 아침가리는 토포스, 지명이지만 말의 울림도 있다. 반면 조경동은 정보만 있지 울림이 없다.
그는 그렇게 산에 오르며 사라지는 우리말을 섬세하게 느끼고 체득해 나간다.
아웃도어는 시대와 만나 시민 연대와도 연결된다.
밖으로 나가 아이들의 노래를 채록했던 칠레의 빅토르 하라나 스페인 독재정권에 저항해온 카탈루니아를 대표하는 가수 루이 라흐(Lluis Llach) 등은 바깥에서 노래 부른 사람들이다. 그는 루이 라흐(Lluis Llach) '이타카로 가는 길(Viatge a Itaca)' 노래를 틀어주고 가사를 들려준다. 가사는 마치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속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가듯이 바르셀로나의 독립을 위해 배의 노를 저어 나가야 한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언젠가 그가 바르셀로나 주최 연극학회에 참여하는 동안 그들이 쓰는 언어는 세 가지였는데 카탈루냐어, 영어, 불어 뿐이었다고 한다. 스페인어는 쓰지 않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카탈루냐 사람의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는 연극학회가 끝나면 골목길을 헤매며 그런 노래 음반을 모으고 그 노래 속 언어를 배운다.
또 이어 들려준 노래에는 바스크의 대중 가요도 있다. 바스크 또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민족이다. 언어학자들은 바스크, 리투아니어어를 원형을 간직한 유럽의 고대어로 본다고 한다. 스페인어와 완전히 다른 언어라는 것이 신기하다. 그들이 민족언어를 어떻게 지킬 수 있었을까. 그것은 대중가수들이 노래를 통해 스페인 강제 편입과 프랑코 독재 정권에 저항하고 언어를 지키는 방식으로 이어져 온다.
발틱 웨이(Baltic Way)는 자유를 위한 3개국을 잇는 것으로 1989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발트 3국에서 대부분의 국민이 길 위에 나와 사람들의 손과 손을 모두 이어 만든 600km의 ‘인간사슬’이다. 그들은 길 위에서 평화적으로 인간사슬을 잇고 노래로 혁명을 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길과 노래를 흑백 사진을 통해 바라보고 후대의 사람들이 그 시간을 기억하는 것은 평화와 자유를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의 지난 1987년과 촛불도 떠올려 본다.
요즈음 그를 바깥으로 유혹하는 사물은 자전거이다.
초기의 자전거는 여성 해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현대에는 환경 문제와도 이어진다.
‘가장 단순한 기학학적 사물’이라 정의 내리며 자전거에 빠져 있는 그는 자택에서 작업실까지 주로 자전거로 이동한다고 한다. 생각과 몸의 실천이 너무도 당연히 연결되어 있는 사람, 연극평론가 안치운의 삶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그는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연극을 공부하는 사람이다. 연극은 작은 무대에서 정해진 짧은 시간동안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가 공부하는 연극과 그 무대는 물리적인 한계 너머에 있는 것 같다. 시간과 공간을 떠나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고 무대 뒤와 바깥까지 넓혀나가는 일이다. 울림이 있는 언어를 간직한 화전민, 죽음을 앞 둔 발터 벤야민, 발틱 웨이 인간사슬을 이어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바깥, 그는 그런 바깥을 다니며 혼자 말하는 대신, 더 많이 듣고 알게 된 이야기를 영추포럼에서 들려주었다.
글 황두진건축 홍수영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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