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회 및 제63회 영추포럼(140710/140807)후기: 동덕여대 회화과 서양미술이론 교수 강수미
강 선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벤야민 전문가로서 특히 그의 예술철학을 심화하고 확대하는 연구를 계속 해 오고 있는 분이다. 연구와 저술, 강의를 업으로 하시는 분이지만 듣는 이를 대충 봐줘가며 이야기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만큼 상대를 존중했고, 자신의 밀도를 나누고자 하는 의지에 양보가 없었다. 그래서 강의 내용 못지않게 강의 자체가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되었다. 이제 어느 정도 시간적 거리가 생긴 지금, 남아 있는 기억을 더듬어 내게 남아 있는 강의의 기억을 몇 가지 정리해 본다.
1. 벤야민은 많다, 그러나 벤야민은 없다.
근대 도시에 대한 성찰과 사유라는 면에서 벤야민은 건축계에서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강 선생은 이번 포럼 이전에도 한 건축가 그룹을 상대로 벤야민에 대한 연속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와 관련된 일종의 사상적 역설, 즉 푸리에 등이 꿈꿨던 이상적 공산사회의 도시건축적 장치들이 오히려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가능해졌다는 사실 등을 지적한다. 현장 일선에서 일하는 건축가들에게 이것은 자신의 작업의 지향점을 측정하고 가늠케 하는 일종의 지표의 성격을 갖는다. 사회주의 도시계획의 이상 중 하나인 직주근접이라는 개념이 오히려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재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미학과 예술 비평에서도 이미 벤야민적 사유는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그만큼 벤야민에 대한 오해도 넘쳐난다. 그래서 벤야민은 많으나 동시에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권력과 착종된 아우라에 대한 그의 비판이 아우라 자체를 해체하려는 시도로 (잘못) 받아들여진 것이 그 좋은 예다. 이해건 오해건 그의 사고가 미치고 있는 영향은 아직도 광범위하며, 벤야민은 그가 속해있던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2. 다공성, 미래 혹은 전근대적 가치
나는 다공성과 기하학을 내 건축의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을 설정하고 있고 다공성에 대한 벤야민의 사유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나에게 다공성은 도시와 건축물 내에 삼차원적으로 존재하는 물리적인 공극이, 서로 다른 스케일에서 어떠한 기능적, 사회적 성격을 갖는가라는 문제로 다가온다. 구체적으로는 실내 공간도 아니고 외부 공간도 아닌, 즉 처마 밑이나 필로티, 발코니 같은 것이 갖는 건축적 가능성에 대한 생각들이다. 그 보다 작은 스케일로는 건물의 입면에 적용된 다공성의 개념이 어떻게 기후 및 경관 조절 장치로서 기능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고, 그 보다 큰 스케일로는 도시 속에 이러한 다공성이 입체적으로 존재하면서 생산 및 휴식 등의 사회적 기능을 담을 것인가 라는 문제가 있다. 나에게는 이 다공성이야말로 도시적 밀도의 압박으로부터 삶의 터전을 보다 더 풍요롭게 해 주는, 미래적 가치를 담은 핵심 개념이다. 한편 벤야민에게 다공성은, 나폴리 구시가의 풍경에서처럼 도대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구별되지 않는, 그래서 살림살이가 길에 버젓이 꺼내져 있는, 이른바 전근대적 상황을 설명하는 개념적 도구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벤야민은 다공성을 도시를 이해하는 핵심개념으로 인식하면서 오래된 것과 새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 사물들간의 침투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만 그가 이 다공성을 나폴리와 같은 오래된 도시의 특성을 기술하기 위한 개념으로 본 것인지, 아니면 이를 통해 도시의 미래와 관련된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제시하고자 한 것인지에 대해 나로서는 좀 더 공부가 필요하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회활동의 실내화가 근대 자본주의적 현상이라면, 요즘 우리 도시들에서 일어나는 소위 ‘야외의 발견’ 현상은 전근대적 다공성이 현대도시에 새로운 매력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요소로 작동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그가 말하는 다공성과 내가 다루고 있는 다공성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앞으로 좀 더 연구하고 고민해볼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강 선생은 나에게 아주 흥미로우며 절실한 연구 테마를 하나 준 셈이다.
3. 읽는 미술, 보는 미술
이번 두 번의 강의를 통해서 로니 혼에서 시작하여 현재 강선생이 연구 개발해 동덕여대 석박사생들이 지역아동센터에서 실행하고 있는 관계지향적 미술교육프로그램에 이르는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들을 통해 현대의 미술이 얼마나 '정확하고 정밀'한 사유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그러면서도 다원적인 가치들을 포용하려 하고 있는지 그 일면을 알 수 있었다. 올해 영추포럼의 연간 주제가 '정밀과 정확’이었음을 상기하면 이는 우리가 던진 주제에 대해서 강 선생이 적극적으로 논의를 확대하고 심화하려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이러한 ‘읽는 미술’에 대한 ‘보는 미술’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건축가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그 어떠한 건축도 결국 그 안에 삶이라는 ‘너절하고 시시한 덩어리들’을 담아야하는 탓에, 이론적 장치를 초월하는 일상의 평범함이 어쩔 수 없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그것이 순수창작이 아닌 건축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건축을 끊임없이 흥미롭게 하는 생산적 갈등의 근원이기도 하다. 결국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의 흐름이 건축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되었다.
글 황두진건축 대표 황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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